하도 책을 안 읽고 사는 거 같아서, 뭐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딱히 또 뭘 읽고 싶은 책이 없어서 고민 중인 요즘이다. 만화책을 다 읽고 나니 읽을 게 없어서 이것저것 뒤적여 보다 미루어 두었던 골치아픈 책들이 생각났지만 책 두께들을 보니 엄두가 안난다. 집에 여행관련 책이 많아서 그 중 하날 볼까 하다가도, 그럼 여행가고 싶어져서 안되겠다 싶다. 뭔가 가벼운 에세이 같은게 있었으면 했는데, 눈에 들어오는 책이 우디앨런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라는 책이다. 하 - 제목도 우디앨런스럽다. 난 우디앨런은 잘 모르지만 위트와 시니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라는 정도는 알기에, 선뜻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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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디앨런의 소문만 들었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번역이 거지같아서 문장읽기가 무슨 퍼즐맞추기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인간을 향한 그의 속시원한 비아냥을 보고 있자니 어지러운 문장을 헤쳐서라도 그와 대면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의 비아냥은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데, 순식간에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을 갖고 있다.
보리스 이바노비치와 그의 아내 안나는 편지를 뜯어보고 사색이 돼버렸다. 그것은 세 살배기 아들 미샤가 맨해튼 최고의 명문 사립 유치원 입학 면접에 떨어졌다는 탈락 통지서였다.
ㅋㅋㅋㅋ 저것이 책의 첫 문장이다. 뉴욕도 서울이랑 다를 바 없나 보다. 명문 사립 유치원이라니. 전 세계 어딜가나 부자들의 과열된 교육열은 똑같은가 보다. 우디앨런의 조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누구라고 이름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꽤 유명한 투자 은행가 하나도 수년 전에 아들을 최상급 유치원에 넣으려다 실패했어. 그후 아이의 핑거 페인팅 능력에 대한 치욕스러운 소문이 한동안 사람들 입방아에 올랐지. 결국 그 아이는 부모가 선택한 사립 초등학교에서도 입학을 거절당했고, 어쩔 수 없이... 친구들은 전부 다 예일대며 스탠포드대에 진학했지만, 그 불쌍한 녀석은 ... 말하자면 수준 있는 유치원의 빛나는 졸업장을 따지 못했기 때문에 갈 수 있는 대학이라고는 미용 전문대밖에 없었어"
그는 정말 집요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예술가가 되서 그렇지 그런 재능이 없었다면 꽤 찌질한 사람이 아니었을까.(하긴 대부분의 예술가가 성격은 무지 찌질하다.) 어쨋든, 이런 통렬한 비아냥이 책 전체에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니까 잠시도 한 눈을 놓을 수가 없다. 멀쩡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비아냥일 때가 많고, 잘못하면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매력덩어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할아버지에게 이 무슨 망발;;) 하지만 그의 매력은 단지 문장력이 좋고 위트가 좋은데만 그치지 않는다. 진정 그의 매력은 인간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다. 사실 세상과 인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알게 되는 통찰 중 하나가 바로 우스꽝스러움이다. 세상과 인간은 사실 겹겹히 둘러싼 포장지를 벗겨내면 그 안에 들어있는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그걸 쳐다보고 있으면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다 오글거릴 정도로 창피하다. “고작 이거였어?” 뭐 그런 느낌이랄까. 더 우낀 건 이게 다 비밀처럼 가려져있다는 건데, 사실 그럴만도 한 것이 온갖 미디어와 소문들, 신화들에 의해 켜켜히 포장이 되어 있는지라 이것을 벗겨내는 작업이 만만치 않을 뿐더러, 굳이 힘들게 그런 걸 해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비밀로 묻혀져 있는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게 중에는 그 포장을 벗겨보려 하는 사람들이 있고,(이런 쓸데없는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근데 궁금하지 않은가?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대게 그런 건 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이 하게 마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밀에 도달하는 사람이 많은 건 아니다. 나는 그 비밀에 도달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소수의 예술가들이라고 보는데, 어쨌든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벗겨내서 보게 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비밀은 고작 ‘우스꽝스러움’이어서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고, 그래서 그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니컬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디앨런처럼.
나는 우디앨런의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지만, 예전에 봤던 [Everyone says I Love You]란 영화는 잊지 못하고 있다. 나는 사랑에 관해 다룬 영화 중에서 이 영화를 최고로 뽑는데, 무작정의 비관도 아니고 그렇다고 억지스러운 희망도 아닌, 덤덤하게 사랑의 딜레마를 바라보며 그 어쩔 수 없음을 드러내면서 관조하는 그 시선과 통찰이 꽤 설득적이었기 때문. 사람이란 동물이 생각보다 나약하고 갈대 같아서 자신과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그 대상을 편견 없이 정면으로 바라보며 덤덤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우디앨런은 사랑에 대한 냉정한 관찰과 따뜻한 시선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내가 본 몇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위트와 유머까지 곁들인다면 그야말로 최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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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뜬금없이 갑자기 그에게 매료되어 그의 영화들을 하나씩 다운받고 있다. 워낙 다작이어서 언제 다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사람과 인생에 대한 회의가 들거나 막막한 기분이 들 때마다 도망쳐 숨을 수 있는 다락방 같은 곳으로 남겨두려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든든한 기분이다. 매력적이고 놀라운 예술가를 만나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오랜만에 느끼게 해준 우디앨런. 왠지 뿌듯하다…
>> 네이버 영화 정보 [삶의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노장 우디 앨런 A to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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