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스포일러가 일부 담겨 있음




설국열차 (2013)

Snowpiercer 
7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정보
SF, 액션, 드라마 | 한국, 미국, 프랑스 | 126 분 | 2013-08-01



설국열차가 말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1. 인간은 벌레와 같다.

2. 세상을 움직이는 건 시스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 비스무리한 걸 적용해보자면,


3. 그러므로 세상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지는 벌레들의 집합이다. 


흠, 아주 처참한 결론이다. 무슨 음모이론같기도 하고.(지금 봐도 새로운 관점인데, 이 두 가지 관점을 모두 100년 전에 이미 제시했던 카프카는 얼마나 대단한 선구안을 가진 작가였던가!)


영화니까 아무렇게나 막 얘기해도 되긴 하겠다만, 아무렇게나 막 얘기하다보니 저리 된 건 아닐 것이다. 적어도 봉준호라면 세상과 인간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있을 것이고 또 역시 그라면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적인 경고가 될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저런 관점은 참으로 그 다운 관점이고, 또한 지금의 세상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관점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그의 '경고'라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하지만 영화는 하나의 산업이다. 자본의 투입이 불가피한. 그것도 이런 영화라면 거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대자본이 투입됬다는 건, 흥행이 영화의 제1의 목적이 된다는 걸 의미한다. 즉 한 사람의 가슴에 얼마나 깊게 남느냐가 아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적당한 재미를 줄 수 있느냐가 영화가 달성해야 할 최종 성과가 된다는 것이고,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디스토피아적 경고 따위, 너무 지나치면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행과 작품을 모두 잡아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감독이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뭐 또 할말이 없다만... 너무 그렇게 가혹하게 모든 반찬이 맛있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손님의 미각보다는 메인 디쉬가 맛있으면 반찬이고 서비스고 인테리어고 뭐든 용서할 수 있다는 마음 넓은 동네 아저씨의 미각으로 영화를 한번 들여다 보자.


레스토랑 사장이 메인 디시에 거는 판매의 관건과 주방장이 메인 디시에 거는 맛의 승부처는 어쨋든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주방장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승부를 걸었던 맛의 방법론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는가? 


마음은 넓지만 나름 민감한 혀를 가진 동네 아저씨의 미각으로 맛본 그의 메인 디쉬는 가히 훌륭하다. 수 많은 입소문과 언론의 설레발로 인해 높아진 기대치를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리가 없다'는 속담의 핵심은 어쩌면 먹을 거리가 아닌 '소문'에 있을지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했다 그 맛은. 아주 쌉쌀하지만 짝짝 붙은 감칠맛, 뒷맛의 여운까지... 다만 황급히 싸구려 단 맛의 다저트를 내 놓아서 살짝 아쉽긴 했다만. 그가 사장은 아니기에, 사장이 디저트라도 달게 내 놓으라고 다그쳤을 가능성에 크기에, 결국 그가 내놓은 식단은 훌륭했다고 투썸스업을 해 주는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제, 메인 디쉬에 대한 칭찬과 주방장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늘어놓았으니, 그 싸구려 디저트에 대해서도 조금 얘기해볼까 한다. 이제는 단무지의 식감 하나라도 따지고 드는 까다로운 손님의 미각으로 말이다. 


'세상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지는 벌레들의 집합이다.' 라는 명제로 영화를 들여다 보자면,


여기서 세상은 곧 기차 그 자체이고, 시스템은 엔진, 그리고 엔진을 떠받치기 위해 존재하는 칸으로 구분되는 계급체계다. 벌레는 여기 나오는 모든 인간(꼬리칸부터 머리칸까지)이 된다. 아주 쉬운 공식이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친절하게 대사로 설명도 해준다. 총리와 윌포드의 입을 통해.(아, 그들의 대사는 거의 영화해설서 수준이었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역시 주방장이 선택한 조미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차가 곧 세상이라는 설정은 이 영화의 스토리 내 연대기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게 2030년이든 3030년이든 무슨 상관이랴. 온난화때문이건 온난화를 막기위한 약품 때문이건. 어쨋든 바깥세상은 '없는' 세상이라고 해 두는 편이 좋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숨 쉴수 없는 우주나 정착할 수 없는 금성 정도가 될려나.


벌레처럼 생존본능만 남은 인간들과 그 인간들을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이라는 어찌보면 찰떡궁합, 어찌보면 절망적인 딜레마를 설정해 놓고서 이를 탈출하는, 그러니까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 가능성을 보여주는 방식은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다. 영화 전반에 걸쳐 짜여져 있는 구조,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을 것 같은 그물망을 만들어 놓고서는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거의 우연에 가까운 몸짓에 불과하다. 한번 나가보자는 식의. 그나마 나가보자는 행동을 선택하는 또 한명의 주인공(송강호)은 캐릭터마저도 없는 인물이다. 그냥 똑같은 벌레에 불과하다. 


이런 해석은 가능하겠다. '인간은 생존본능과 동시에 자유의지도 가지고 있다'는. 그런 의미를 담았다는 말이 가장 설득력있으려나. 혹은 '시스템에 갇혀 있는 인간은 시스템밖에 보지 못한다. 시스템 밖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그 눈의 발견이 곧 시스템으로부터 탈출의 시작'이다.' 정도. 


하지만 어떤 것도 설득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봉준호답지 않다. 그의 전작들을 보라. [살인의 추억], [마더]같은. 특히 [마더]를 보자.(나는 [마더]가 봉준호의 최고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장 그 답고) [마더]에는 그렇게 쉽게 타협하지 않는 작가적 시선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 [설국열차]도 그렇길 바랬다. 그러니까 이건 그에게 너무 부담스러운 기대고 너무 편협한 비판이다. 마치 메인 디쉬는 제껴 놓고 디저트 하나 가지고 흥분해 대는 꼴불견 손님의 말도 안되는 컴플레인같은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봉준호라면 그렇게 얘기할 만한 감독이라 생각한다. 메인 디쉬가 그만큼 맛있으므로 디저트의 아쉬움도 큰 법이다. 이를테면 온갖 향신료와 조미료로 재료의 본질을 흐리는 박찬욱같은 주방장이 아니므로. 그의 영화가 하는 말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 그리고 고민의 흔적이 배어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해법 혹은 결론 또한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되었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다. 


영화 감독이 무슨 대통령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니지만 말이다. 어쨋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영화'라는 매체를 다루는 사람이며, 무엇보다 '작가'의 반열에 오르고자 한다면 그래서 그 영향이 더 막강해지는 감독이라면 더 끝까지 고민을 밀고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하게 된다면(아마 그러리라 생각한다), 이 작품을 발판삼아 자기 의지를 더 관철할 수 있는 유명 쉐프가 될 수 있겠지. 그때 내 놓는 디저트는 지금과 같진 않으리라.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되는 감독이다. 




덧붙여, 영화와 상관없이,

인간의, 인류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인류의 자기성찰은 가능할 것인가. 나는 예전보다는 조금 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시스템과의 싸움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되어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인간은 끊임없이 성숙해 왔다. 이런 결론 또한 무책임하고 허망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는 스스로 그걸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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